산행기/夏

외가댁 들렀다가 내변산으로...20140812

서로조아 2014. 9. 4. 15:06


외가댁 들렀다가 내변산으로...

2014.08.12(화, 흐림)

전주(08:10)→부안(08:50~09:10)→내소사주차장(10:20)→내소사(10:40)→세봉(11:40~50)→관음봉(12:30)→관음봉삼거리(13:00)→재백이고개(13:25)→계곡휴식(13:30~14:00)→직소폭포(14:20~30)→선녀폭포(14:50~15:00)→저수지(15:15~25)→봉래곡삼거리(15:30)→봉래교(15:40)→실상사지→날머리(15:50)→사자동(16:00)→중계교(16:20)→청림(16:35)→부안(17:00~10)→전주(18:10~)


 


 


 



금릉경포대로 올라 도갑사쪽으로 갈까 했는데 무릅의 피로가 느껴진다.
하루 정도 쉬었다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야간조명으로 보았던 삿갓바위를 다시 찾아 간다.

화려한 불빛으로 떠들썩했던 평화공원은 적막한데 인근 해안에 여객선이 보인다.
노인분께 여쭈니 예약된 단체손님이 있을 때만 운행되는 유람선이란다.

예전엔 광주까지 드나들었는데 영산강댐으로 막힌후엔 오염물질이 퇴적되어 갯벌생물들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교량을 외면한 위정자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대불공단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려 했던 것 같은데 안타깝다.

아침햇살로 고운 자태 드러낸 갓바위 참으로 신기한 모습이다.
어쩌다 언제부터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


 


 


 



외가댁이 멀지 않으니 형님(75)과 숙모님(90)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로 더욱 소원해지면서 어느새 12년이 훌쩍....

광주로 올라가 부안행 찾다가 출발대기중인 고창행으로 달려간다.
장성 지나 고개 넘어가니 수박으로 유명한 고창인데 부안행은 1시간반을 기다려야 한다.

고창 시가지 살펴보다 재래시장에 들러 설렁탕으로..


 



역시 호남의 먹거리는 정갈하고 맛있다. 나홀로 손님이지만 어인 일이냐며 전통 식혜도 주시고...

외가댁 가는 중인데 식혜맛이 어머님 해주시던 바로 그 맛이네요.
엿기름이 좋아야 향긋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난다 하셨는데...

두세 사람 테우고 곰소 지나 부안인데 출발대기중인 마을버스만큼은 고령의 아줌마분들로 떠들썩하다.
영원마을 가는 버스에 올라 거룡리 여쭈니 모두가 내집 손님처럼 이 차를 타도 걸어갈 수 있다고...

예전에 없던 신설도로가 들판을 가로 지를 뿐 더이상 물어볼 자도 없다.
옛이야기속의 길을 찾아 가는데 낯설지라도 낯설지 않고 외할머님, 외삼촌,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하는 것 같다.


 


 


 



농경시대 남존여비 사상은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던 것 같다.
출가외인은 글도 못 배우게 하고 농사일만 거들도록 했다니....

더욱이 혼사도 어른들이 결정하는데로....
강요된 출가로 고생길이 막급했다면 마음속에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됨은 당연하리라.

왜놈에 주권을 빼앗겼으니 농산물 약탈과 부역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버님은 일본으로 끌려갔으니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어미만 바라보고 울어대는 자식들 어떻게?

외할머니도 일찍이 홀로 되어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다는데...
형님은 할머니 시키는데로 쌀을 지고 농수로 따라 멀리 정읍까지 남몰래 쌀을 져 나르셨으니 ...
녹초가 되신 할머님은 텟마루에 걸터 앉자마자 긴 한숨 내 쉬며 담배연기를....

이런 모습 보는 순간 그 누구에게 말못할 울분이 복받쳤을 것이다.
간곡한 호소를 짓밟아 놓고 이제와서 무엇이 안타깝다고?
화풀이하듯 마구 쏟아내는 불평에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님...
어미 마음 몰라 주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만 심히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으리라.

아버님은 곤궁할지라도 술과 노래를 좋아하시며 낙천적이고 한량이신지라 남에겐 좋아보이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어린자식 품고 살아가는 어미의 고생은 말이 아닐 것이다.

아껴 쓰며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이 강하셨던 어머님인데...
아버님은 모아 둔 것 알기만 하면 어떻게든 빼내어 주막집으로 향하셨다니.....
마음씨 고운 우리 아버님이 젊은 시절에 왜 그러하셨는지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어쩌다 오빠집에 내려가시면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한많은 이야기로 눈물만 흘리셨으리라.
어머님보다 10년 연하이신 숙모님도 듣고 계셨을테니 구걸하러 왔나 하는 의심도 받았으리라.

외삼촌 논일 가신 사이 갑자기 떠나 오셨을 것이다.
논 일하다 떠났음을 알자마자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며 허겁지겁 뒤쫒아 가며 소리 높혀 불러 보지만...
어머님은 손만 흔들고 더 이상 돌아보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워낙 냉정하셨으니....

그때 그 시절 역사의 현장은 광활한 들판 저편으로 오늘도 변함없는 듯하다.


 


 



외할머님과 외삼촌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또한 무거운 쌀 지고 먼 길 오르락 내리락 고생 많으셨습니다.
숙모님은 말할 것도 없이 마음 고생 심하셨지요.
참으로 한많은 시대였으니 누굴 탓할 수 있겠는지요


 


 


 



이른 저녁 들면서 이런 저런 안부 외엔 할말이 없다.
요즘 농사가 어떠냐고 여쭈니 갈수록 추곡 수매량이 줄어 처분도 어렵다 하신다.

농촌에 태어나 농사일 거들다 평생을 농사에 전념했건만...
오늘의 현실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방치된 느낌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첨단제품(텔레비젼, 스마트폰) 하나만 팔아도 쌀을 몇가마 살 수 있다지만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닥치면 수입 중단은 시간문제이리라.

공산품처럼 거래된다하여 먹거리도 동일시 하는지?
먹거리의 근본은 풀이요 풀의 씨앗임에는 영원 불변이리라.
극히 단순해 보일지라도 첨단기술제품보다 소중할 때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식량위기는 천재지변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초근목피로도 살아남을 자는 살아남을 것인데 특이사항까지 상정하여 경쟁력 없는 것으로 식량자립기반 고집할 이유 있겠나?

위기상황이 닥치면 끼리끼리 협력하는 수밖에 없을텐데 경제속국인들 어쩌랴?
세상만사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는 법인데...
위정자간에 이 같은 생각이 지배적인지?

심히 안타까운 현실 앞에 무엇으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자고 가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떠날 사정이 있다니 부안까지 테워 주신다.



월출산 가려면 또다시 광주나 목포로 나가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까이 국립공원 변산이 있지 않은가..

전주로 나가 한옥스파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시 부안으로 달려가 군내버스로 줄포 거쳐 내소사다.


 


 


 


 



주능선 따라 여기 저기 불거진 암봉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좌측이 직소폭포라면 우측 능선으로 올라 직소폭포로 하산하면 좋겠다.


 


 



새봉 지나 두리뭉실한 바위길 오르락 내리락 하니 관음봉이다.


 


 


 


 


 


 


 



해저 퇴적암이 융기되었는지 암질에 결이 많아 보인다.

재배기고개에서 직소폭포 가는 길은 내소사와는 반대방향인가 보다.


 


 


 



폭포 가는 길에 계곡에 발 담그고 쉬는데 물고기가 떼지어 이동한다.
폭포 상류인데 어떻게 올라 왔는지?


 


 


 


 


 



완만하고 평퍼짐한 계곡이 움푹 꺼지면서 물소리 들려 온다.
직소폭포라는데 낙차가 상당한 것 같다.


 


 


 


 


 



선녀탕 주변엔 주상절리같은 용암의 흔적도 느껴지고....


 


 


 


 


 


 



계곡물은 저수지에 모여 부안군 고창군민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것 같다.


 


 


 


 


 


 



관리사무소 나오자마자 버스정류장인데 30분후에 도착된단다.
기다리는 시간에 직소천 따라 걷고 싶다.


 


 


 


 


 


 



한적한 산간도로 호기심에 구경하며 걷다보니 중계교 지나 청림이다.


 


 


 


 



내려오는 버스에 올라 부안으로 가서 또다시 전주 한옥스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