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夏

영남알프스 가지산 학심이계곡 2003.0622

서로조아 2013. 4. 12. 11:56

 

 

 



영남 알프스 가지산 학심이 계곡

2003.06.22(맑은 편)

석남사(08:30)→가지산 정상(11:20)→북릉→합수점(14:20)→물놀이(15:00) →학심계곡 폭포4개→쌀바위(18:40)→석남사(20:15)


 

지난 4월27일 들러보려다 실패했던 학심이 계곡을 오늘은 기필고 찾아보겠다는 각오로 산을 오른다.

석남사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터널쪽의 가파른 숲속 길을 택해 오르는데 장마를 앞둔 후덥지근한 날씨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 같다.
중봉밑 초막찻집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길을 잠깐씩 쉬어 가는데 살모사 새끼 한 마리가 등산로에서 몸을 움추린체 놀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조용한 산중 자기네들만의 영역을 사전 허락없이 들어오시면 이렇게 서로가 놀라지 않아요. 다음에 오실 때는 종을 울리던지 해서 사전에 알려 주시면 더욱 반갑게 맞아 주겠습니다 한다. 서로가 좋은 날 되라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능선옆 초막집에서 쌀바위와 가지산 정상을 바라보며 한 숨 돌리고 주인장이 계시는가하여 출입문 쪽을 살펴보니 강원도로 약초 캐러 장기간 비우니 초막집을 애용하셔도 좋다는 푸근한 안내메모가 인상적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중봉, 저만치 정상이 눈앞이다. 바위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짓푸른 호박소 계곡과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둘러본다.

 

 

정상(1240m)에서 산꾼들 틈에 끼어 학심이 계곡주변 지세와 방향을 확인하는데 옆의 동료는 관절이 이상하다며 쌀바위 능선길로 하산하여 가지산 온천과 수영을 즐겼으면 한다.

 


은근히 걱정도 되지만 예정대로 북능을 타고 내달린다. 걷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운문사 쪽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북능 초입 암릉에 올라서니 가지산에서 아랫재로 이어지는 능선과 운문산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에 힘들었을 텐데 또 왔느냐고 반겨 주는 바위에 앉아 된장 고추장 상취로.....


 


간간이 로프가 설치된 암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바위틈새에서 어렵게 자란 잣나무가 앙상한 가지끝에 몇개의 굵은 잣송이를 뽐내며 자신을 보고 가라고 한다.

 


완만한 능선길로 내려서니 간간이 하늘 높이 버티고 있는 낙낙 장송과 벌거벗은 체로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고사목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영남 알프스 일대가 옛적에는 소나무가 많았었는데 일제 강점당시 모두 송진채취로 사라져 버리고 몇 구루만이 간간이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운문사가 위치한 지역은 당시로서는 차량진입이 불가했던 깊은 산중인데도 노송 밑둥마다 영원히 아물지 않는 큰 상처를 안고 우리 민족의 애달픈 역사를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들의 한반도 수탈 야욕이 전 국토를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갔음이 명백한데 오늘의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자신만의 안위와 향락만을 추구하지는 않는지......

사리암 주차장이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서 급경사 길로 내려가니 서서히 물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이곳은 들어 갔다하면 되돌아 나오기 힘든 그야말로 심산유곡이다.

조금 더 가니 학심이 계곡으로부터도 한줄기 물줄기가 좁다란 바위틈새로 은구슬을 뿜어낸다. 잠시 그곳에서 고기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는데 연이어 종아리에 뽀뽀를 해대며 자기네들과 영원히 같이 살자고 속삭인다.

천연 바위 욕탕도 들렀다 가라고 하는데 깊이를 알수 없어 조금은 두렵다. 혹시 발을 끌어 당기지는 않을까하여 조심 조심 바위를 잡고 물속으로 잠겨본다.

발끝에 바위면이 느껴지니 안심이 되어 한없이 솟구치는 은구슬들과 놀이를 펼친다. 물온도도 차가운 편이지만 내려오는 길에 데워졌는지 견딜만하다.

 

 

 


오자마자 계곡수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참외를 빼 먹고 원적외선이 넘치는 평평한 바위에 누우니 그만 엄마 품속으로 사르르........ 계곡 물소리가 자장가 되어 꿈속을 해매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오후 3시다.

그들과 어렵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머리만 내민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물 따라 부지런히 올라간다. 등산로가 어디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계곡을 오르다보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갖고....

좁은 협곡을 돌아가니 높은 암벽 사이로 폭포수가 하늘로부터 은구슬을 검푸른 소에 마구 쏟아낸다. 이곳이 아마 학소대인 것 같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심산유곡을 따라 하염없이 올라간다.

 

 

 


이제는 더 이상 발 디딜 곳이 없는 수직암벽이 나타난다. 신발을 벗어 들고 물속 돌을 밝아보니 대단히 미끄럽다.
전면에는 널따란 바위 한쪽 면을 따라 은구슬 소리가 요란하다.


 


엉금엉금 암벽을 중간정도 올라가니 돼지형상의 커다란 바위가 물이 흐르는 사면에 버티고 서있는데 폭포로 떨어지는 물이 연상 어서 밑으로 내려가라고 야단이다. 매년 물세례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장구한 세월동안 경사면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가슴높이만한 바위를 올라서야 하는데 잡을 곳이 있는가해서 주변을 살피니 바위틈새에 줄끈이 보인다. 선배 산꾼을 뵙는것처럼 반갑다. 그분도 이곳을 우리들처럼 다녀가면서 고생끝에 후배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 테니....

그것에 의지하여 올라가 보니 제법 계곡폭이 넓어진다. 계곡섬에서 자란 목련꽃 같은 함박꽃이 은은한 향내를 내뿜으며 가까이 와 보라고 한다. 좀처럼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이런 곳에 어쩐 일이냐고 무척 반가워한다.

 


깊은 침묵 속의 태고적 풍광에 도취된 우리는 산쪽의 리본이 이젠 그만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징검다리 건너기를 계속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가니 깎아지른 듯한 암벽 사이로 또 다른 폭포가 보이는데 이번에는 깊은 소가 연이어 있어 물길 따라 더 이상 오르기가 불가능한 것 같다.

 


허는 수 없이 암벽을 기어 올라 숲 속을 헤집고 얼마간 나가니 다행히 소로와 마주친다. 이제부터는 계곡감상은 그만하고 등산로를 따라 빨리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쪽 저쪽에서 내려오는 새로운 작은 계곡과 마주치는데 어느 쪽 계곡을 타야 할지 망설여진다. 주위가 온통 작은 바위돌로 널려 있어 어디가 등산로인지 물길인지 분간이 어럽다.

숲 속은 서서이 석양빛으로 물드는데 너덜지대 사이로 리본이 반갑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대충 쌀바위 부근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무조건 위로만 치고 오른다. 너덜지대가 끝나고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어서 빨리 능선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오르는데 한참을 올랐다싶은데도 능선길은 보이지 않아 더욱 조급해진다. 옆의 동료는 세수하다 그만 등산화를 신은체 물속으로 미끄러져 발이 괴로워하는지 지친 모습으로 따라오면서 이젠 정상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연장 하늘이 않보이는 숲속이고 어두워지는데 갈길이 먼지라 은근이 두려운 생각이 든다. 오르다보면 어딘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앞장서 오르는데 갑자기 넓은 길이 나오는데 부근 일대가 안개가 자욱해진다.

반갑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쌀 바위와 귀 바위를 잇는 임도 중간지점인 것 같다. 기쁜 마음에 정상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쳐댄다.

 

 

 


저녁 6:40분 하산길도 최소한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니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거이 탈진 상태이다보니 그만 길옆 밴치에 앉아 버린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앞장서 하산 길을 재촉하는데 급경사길이 미끄러워 힘이 들고. 발걸음도 불편해져 속도가 나지 않는다.

동료는 빨리 내려가야 한다며 이곳부터는 나보다 앞서 잘도 내려간다. 다행이다 주위는 빠르게 어두워져 엉뚱한 길로 빠지기 쉽지만 앞서간 동료와 소리를 주고 받으며 조심조심 뒤 따라 간다.

밤의 적막을 깨는 평소 듣기 힘든 새소리가 더욱 발걸음을 재촉케 한다. 늦더라도 안전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불편해진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기는데 서서히 반가운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계곡 두 개만 건너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석남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칠흙같은 어둠 속 내리막길 끝으로 석남사의 전등 불빛이 반갑다. 비상식의 중요성에 시큰둥한 동료가 먼저 배고파 죽을 지경이라고 난리다.

석남사 버스종점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는 안 보이는데 가게주인은 오늘 영업을 마무리할 눈치다. 계란과 이어서 좋아하는 빙과류를 연장 먹고 시계를 보니 밤 8시30분이 지나고 있다. 벌써 도착되어야 할 버스는 아니 보이고 함께 기다리는 아줌마분들도 안달이다.

저녁을 먹고 울산행 직행 막차(21:30)를 타려면 비상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지나는 차량에 도움을 청해본다.

얼마 안가니 한 분이 세워주는데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 가지산 정상에 가셨다며 언양까지 산행 이야기로 함께 꽃을 피운다.

정상에서는 평범하게 보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 있었다니 역시 산도 구석구석 밟아 보지 않고서는 감히 보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바로 옆의 심심이는 평범한 계곡인데 학심이는 빼어난 협곡과 멋쟁이 폭포들을 다수 거느리고 일반인의 접근에 새침때기를 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각자 거쳐온 과정이 다를지라도 역시 같은 물이니 서로 싸우지 않고 합수점에서 만나 운문사 방향으로 다정하게 흘러간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