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秋

석남사→간월/신불산→등억리 20031026

서로조아 2013. 4. 12. 14:55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다시 오른 간월능선길
2003. 10. 26(일), 맑음

석남사 터미널(09:30)→터널위 능선길→능동산 삼거리(11:15)→배내고개(11:50) →배내봉(12:20) →간월산(15:10)→신불산(15:50)→등억온천장(17:15)

 

 






오늘은 4주만에 가는 가을산행
하지만 어머님을 홀로 떠나보낸 죄스러움으로 나의 마음은 아직도 한없는 눈물이 흐른다.
바로 2주전 오늘 가는 코스로 산행을 떠나 천상을 통과(08:25)할쯤 어머님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으니....

심부전으로 약 두달간 고생하셨지만 약을 복용하시면서 다소 호전되신 것 같아 쉬는 주에 상경키로 미루었는데 그만..
남들은 86세라 하니 호상이라고 위로하지만 훌쩍 떠나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뼈와 살을 깍아 4남1녀의 자식들 뒷바라지하시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할머니 눈치만 살피는 손자에게 먹거리 챙겨주시랴 집안청소하시랴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으셨던 어머님.

일이 앞에 보이면 거동하기 힘들지라도 당장 조치하시고 마는 깔끔하신 성격이신데 저희들은 일만 저지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방관만했으니...

한번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 또한 있기 마련이라지만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마지막 가시는 순간조차도 손한번 잡아 주지 못했으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역시 오늘도 석남사행 직행버스는 여지없이 08:25쯤 울산-언양간 고속도로상의 천상 정류장을 통과하고 있다.

어머님 이제부터는 세상 짐 내려 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저희들 걱정일랑 하시지 말고요..... 저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지요.
객지에서 굶지는 않는지 항상 먹거리가 부실하다고 걱정이 많으셨던 어머님

하지만 이 세상에 어머님만큼 자식을 위해 먹거리 잘 준비해주시는 자가 어디 있겠어요. 어머님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것 이상으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 이제부턴 모든 염려와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어머님

멀리 차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신불산과 가지산 준령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건만 지는 낙엽과 함께 어머님 역시 떠나가시고 아니 계시니 깊어가는 이 가을이 더더욱 쓸쓸하다.

석남사에서 배내골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정시간이 지나도 아니오고 평소처럼 기다리는 산꾼들도 별로 없다.
30분이 지나도 아니 오길래 가게 주인장에 물어보니 잘 지켜보라고만 하고 에라 배내 고개까지 차도를 따라 걸어가지 하며 좁은 차도를 따라 오르는데 통과차량이 빈번하여 위험할 뿐 아니라 내뿜는 내연으로 좋지 않다.

이렇게 갈바엔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머리를 찾아보며 걷는데 비슷한 길이 보인다. 호박돌이 뒹구는 이 길은 나홀로 처음이고 앞서 가는 사람도 전혀 없다.

가다보면 터널위가 나오겠지하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오르는데 저만치 세분의 모습이 반갑다.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배내골행 버스가 예정시간을 훨신 넘겼는데도 어찌된 일입니까 물으니 언양에서부터 산꾼으로 만원이 되어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석남사를 통과했다고 하신다.

능선가까이 급경사지에서 위를 처다보니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잎이 남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무척 밝게 빛난다.

 



아쉽게도 곱게 물든 단풍을 찾기 힘들다. 매미탓인지 그래도 한 두 그루 감상했으니 다행이다.
능선에 오르니 능동산을 거쳐 사자평으로 가시는 산악회원분들이 좁은 능선길을 일렬로 촘촘히 걸어가고 있다.

어느정도 뒤따라가다보니 하산일정에 차질이 올 것 같다는 조급한 생각이 든다.
앞지르기에 적당한 지역에서 그만 양해를 구하며 서둘러 내달린다.

저멀리 사자봉에서 얼음골로 내리 뻗은 가파른 산줄기가, 바로 건너편으로는 백운산의 암봉과 가지산 정상이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어느덧 울긋불긋 가깝게 보인다.

 

 

 


능동산 정상으로 올라 삼거리에서 배내 고개로 내려가다 넓직한 갈대 숲에 앉아 사과 한 개 먹으며 건너편의 배내봉과 멀리 간월산과 신불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본다.

 

 

 

 

 

배개 고개는 주차된 차량으로 빈틈없이 떠들썩하고 배내봉으로 오르는 길도 역시 산꾼들로 만원이다. 배내봉을 지나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가는데 절벽 위에 평평한 바위가 점심하기에 좋은 듯하다. 벌써 1시가 넘었다

 

 

 


아직 식사 동지를 구하지 못했지만 떼지어 가는 산꾼들 먼저 가시게 하고 이곳에서 식사하며 쉬었다 가지 하는 생각으로 그만 단봇짐을 내려놓고 주저앉는다.
앉자마자 석남사 터미널에서 사온 한계령 조껍데기 누런 곡주 한잔 들이키니 맛이 일품이다

멀리 아른거리는 울산시와 동해바다, 가까이 언양시와 등억온천장 그리고 울긋불긋 총천연색으로 깊어 가는 산줄기를 친구 삼다보니 연거푸 세잔을 쭈~우~욱....

 

 

 

 

 


지난 금요일이 큰형님의 두번째 기일인지라 형수님께 수고하셨다는 전화도 하고 둘째 형님과 동생 그리고 아내에게도 안부전화를 한 후 나홀로 몇가지 아니되는 것으로 맷돌을 돌리지만 그래도 즐겁다.

간월산 정상에 오르니 사람들로 떠들썩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저 아래 간월재는 승용차들이 임도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고 사면에 형성된 평원에서는 억새들이 쉴새없이 나풀거리며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한데 간월산 정상 부근의 소나무들은 모두 자빠져 뿌리를 드러낸채 말라 죽어가고 있다.
세워서 다시 살렸으면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

돌작밭 능선에 뿌리를 내리고 긴긴 세월동안 불볕더위 가뭄과 혹독한 삭풍과 싸워 이젠 어엿한 장송으로 간월산 정상을 오가는 산꾼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준 몇 않되는 멋진 소나무였는데 이렇게 죽어 가도록 방치했으니....

정상을 남보다 먼저 정복하며 자신의 오만함을 과시하기에 바쁘고 말로만 산사랑을 외쳐온 것은 아닌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도 내려오는 산꾼들로 붐비는데 금강폭포로 하산하기에는 늦은 것 같다.
오늘도 온천과 이발을 해야 할테니...

어느덧 등억 온천장쪽은 땅거미가 졌으니 서둘러 내려가야 할 것 같다.
급경사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이 곳도 지난번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애처롭다.

쓰러진 장송이 아무 죄 없는 주변을 짓 눌러 정상적인 성장이 곤란한데 그동안 그늘에 가렸던 다른 편의 나무는 더욱 많은 햇볕을 받아 생기가 돋고 있었으니 마치 IMF 경제태풍이 불어 닥 칠 때처럼.....

지나치게 특출나거나 가지를 많이 거느리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등억온천장 앞에 와있다.

계곡 언저리에 수줍은 새악시처럼 숨어 있는 단풍잎새와 허공에 흰꽃을 날리며 조용히 잿빛으로 물들고 있는 능선길의 억새들.....

 

 

 

 

온 산하가 만추의 영남알프스를 노래하고 있건만
나만은 이 가을이 그 어느때보다도 쓸쓸하고 서글픔이 그지없다.

어머님께 잘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처와 자식을 ...
어머님 홀로 얼마나 섭섭하셨겠어요.
어머님 마음을 잘 알면서도 제대로 받들지 못한 이 불효 자식은 한없는 눈물로 사죄합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저의 어머님의 영혼을 의탁하오니
한 평생 힘겨운 고난의 연속이셨던 저의 어머님을 하나님의 긍휼로 받아주시고 위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