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冬

안무속에 만발한 가지산 들국화는 어느새 가을이 깊었다고 20030907

서로조아 2013. 4. 16. 16:10

 


 


안무속에 만발한 가지산 들국화

2003. 09. 07(일, 흐리고 가끔 비)

석남사 주차장(10:40)→석남터널 능선(11:30)→중봉(12:40~13:00)→가지산 정상(13:30~14:20)→쌀바위(15:00~20)→상운산 정상(16:00)→운문령 헬기장(16:40)→가지산 온천(17:40~19:30)

 

 




오늘도 예보대로 아침부터 비 올 듯이 흐리다.
다음주가 추석인데 아직도 들녘은 푸른색을 띤 벼들이 벼이삭을 삐쭉이 내밀면서 따가운 가을 햇쌀을 고대하고 있건만...

애라 잘됐다 오랜만에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홀아비 냄새 빠져나가라고 이불 털면서 방안공기 휘저 놓고 구석에 숨어있는 머리카락까지도 샅샅이 잡아낸 후 초등학교 시절에 나무 복도 들기름 바르고 광내는 솜씨로 걸래질을 한다.

옷가지들도 손빨래해서 널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포도 두송이와 복숭아 두 개를 커다란 반찬 통에 넣어 단봇짐을 꾸려 놓았는데 어딜 갈까?

가까운 울산대공원으로 들어가 문수경기장 호수로 해서 문수산 정상을 갈까하며 일단 집을 나선다(09:20)

그러고 보니 추석도 내일 모래인데 이발도 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영남 알프스 주변 온천이 좋겠지하며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마침 석남사행 직행버스가 다가온다.(09:30)

고속도로를 달려 언양 터미날로 들어서려는데 길옆에 보기 드문 시골장터가 생겨 햇과일, 붉은 고추, 햅쌀, 콩 등 온갖 농산물을 진열해 놓고 사람들로 분빈다.

언양읍을 빠져 나오기까지 도로변을 따라 금붕어, 잉꼬, 애완견, 토끼도 보이고 도장파시는 분 등 사람 사는데 필요로 하는 것들이 총 출동한 것 같다.

얼음골과 배내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들은 이날만은 기역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내다 팔 짐을 지고 머리에 이고 간월재를 넘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밤늦게 간월재를 넘다 호랑이를 만나기도 했다지.... 친근감이 넘치는 우리네 시골 장터 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고 정겹다.

석남사 주차장에서 다섯분 정도 내리는데 그 중에 날엽한 산행복장의 중년 아줌마 한 분이 시선을 끈다

뒤 따라 가면서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어보니 내가 가는 코스와 비슷하다.
물 한 병 채우고 갈 테니 먼저 가시지요 하는데 괜찮다며 기다려 주신다.
30여분 치고 오르니 나의 숨소리는 커지는데 바로 앞서 가는 분은 잠잠하다. 전문 산꾼으로 예상은 했지만.....

빨리 산행하고 내려 가야할 것 같다며 줄곧 쉬지 않고 올라간다.
더운 나머지 쪽끼 벗고 뒤따라 석남 터널 능선쉼터까지 올라갔지만 그 분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약초케러 갔다던 움막 주인장 얼굴이나 보고 가야지 하는데 마침 안에서 라면을 끓이시고 계신다. 지난번 약초 많이 캐셨습니까 물으니 이런 저런 것 좀 해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모두 생소한 이름들이다. 하산길이면 좋을 것 같은데 허는 수 없지.... 곧바로 인사만을 나누고 중봉을 향한다.


급경사 계단길을 올라서니 들국화꽃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넓직한 바위에 앉아 꽃을 벗삼아 포도 한송이 먹으며 잠시 휴식한 후 정상을 향한다.

내리막길을 내렸다가 다시 올라 암석지대가 가까운데
계속 스쳐 지나가는 안무 속에서도 들국화 꽃만은 화사롭게 피어 여기저기 꽃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정상주변의 평퍼짐한 바위에 앉아 담봇짐을 푸는데 세찬 안개바람이 계속 불어댄다.
우의를 걸치고 혼자서 활동 에너지를 보충하는데 젊은 청춘들이 올라와 주변이 떠들썩하다

네쓰 커피 한잔하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면서 그분들 사진도 찍어 주는데 키 크신 중년 여성 두 분이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와 운문사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 운문령에 주차해 놓고 올라왔는데 운문사에 또 한 대를 추차해 놓았으니 그리로 내려가야 한다며.

아랫재에서 심심이계곡으로 간다해도 요즘 온 비로 등산로가 물길인지 분명치 않을 것이고 더욱이 그길은 산꾼들도 만나기 힘들 뿐 아니라 드물게 걸린 리본도 안개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며 모두들 염려하는 눈치다.

내가 동행해 줄까하는데 두 여성분은 지리산도 종주했다며 여러사람들의 염려에 잠시 멈칫 하더니만 자신감을 갖고 운문산 방향 아랫재가는 능선길을 따라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곳에서 합수점까지 약 2시간이고 사리암 주차장을 거쳐 운문사 주차장까지 1시간30분 정도 소요될 것이니 큰 이상만 없으면 오후5~6시 정도면 도착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염려를 접고 나는 쌀바위 쪽으로 하산길에 접어든다.


앞서 내려가신 분이 그 분들 어디로 가셨습니까? 지도를 꺼내 설명해 주신 분이다.
아랫재 쪽으로 갔어요. 휘날리는 바람에 드러나는 속 머리카락이 40대 후반쯤 되신 것 같은데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하며 오히려 용감해야할 사내들이 멋쩍어한다.

다행이도 쌀바위 정도 내려가니 운무가 조금씩 벗어지면서 운문사 방향 계곡도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다. 그분들 찾아갈 것이다라는 안도감이 든다.

쌀바위로 올라가 포도 한송이 먹으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데 멀리 신불산과 간월산이 벗겨지는 운무사이로 봉우리만 보였다가 다시 가리워지길 반복한다.

석남사 계곡쪽은 흰색 수증기로 꽉 찼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또다시 뒤를 이어 한 덩어리가 아래쪽으로부터 서서히 기어오르다 능선 주변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운무속에 조금씩 드러나는 봉우리들이 평소보다 높아 보이며 그야말로 알프스다.


지난번 폭포경치로 시간 보내다 오후 늦게 학심이골 계곡을 힘들게 빠져 나왔길래 그곳을 살펴보니 한참 오를 만도 하다.


임도에서 계곡으로 빠지는 소로는 운문사로 갈수 있는 길이지만 사리암 스님으로부터 매서운 꾸지람을 각오해야 한다.
심심이계곡이나 아니면 이곳 쌀바위 능선으로 되돌아 나올 생각이 아니라면 안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난 초파일을 앞둔 휴일에 안사람하고 아침 일찍 운문사에서 오르다 사리암 진입로 중간에서 호되게 꾸지람을 받은 기역이 떠오른다. 아침시간부터 번듯한 승용차들이 간간이 소로를 달려 들어 가고 우리는 옆으로 피해 섰다가 걸어 오르기를 반복하는데

위에서 내려오던 승용차가 갑자기 서더니만 승복을 입으신 스님이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대뜸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일반인들의 출입금지구역인데 어떻게 들어 오셨느냐고 하길래 당혹한 나머지 사리암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갈 예정입니다. 하니 다음부터는 아니됩니다하고 아래로 내달린다.

그때 우리는 몹시도 불쾌했지만 스님인데 하며 참았지 나갈 때보니 그 분은 운문사에서 사리암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차량을 통제하시는 분이었다.

걸어 들어가는 것은 일체 금지하고 차량만 허용하는데 반드시 신도증이 있어야 한단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명분은 이해할 만 하지만 들어가 보니 100여대 정도 주차할 만한 넓직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시냇가에는 콘크리트 화장실도 만들어 놓았으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암자 진입로는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고 도로끝에서부터 암자높이까지 제대로 된 삭도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꽤나 영향력이 크신 분들이 모이시는 곳 같았다.

식당입구에는 신도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심산유곡 암벽에 자리잡은 이곳에서조차 신도단체의 일원이 되어야 만이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다니......

씁쓸한 기분에 난간에 앉아 커피한잔 빼 먹은 후 기암 절벽 위 암자주변을 조용히 둘러보는데 안사람은 슬며시 어디 보러 가는 척 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찾아 가보니 복전 접수대에서 우리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해 달라고 주소와 성명을 불러주고 있으니......

바로 옆에 여러 신도분들이 계시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선한 마음씨로 열심히 살고 하늘의 뜻에 따르면 그만이지 하며 낮은 목소리로 투덜대는데
나중에 그 사람은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 왔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지금도 그쪽을 바라보면 이런 기역을 잊을 수가 없다.

기독교나 불교등 대부분의 종교집단이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어 세력화되고 자기네들만의 친목도모에 주력한 나머지 종교 본연의 사명(?)은 저 버린지 오래인 듯 싶다.

우리 자식이 잘되고 사업이 잘되라고 기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파헤쳐 보면 온갖 욕심의 표현이 아닐까?

상운산 정상에서 운문령 계곡을 둘러보고 서둘러 온천 가는 길로 내달린다
가지산 온천에 들러보니 날씨 탓인지 매우 한산한 편이다.

이발소 아저씨 하는 말이 목욕손님은 물론 이발손님도 매우 줄었다고 하기에 울산지방은 IMF도 모르고 지날 정도였다는데 실제로 그렀습니까 되물으니 울산지방도 요즘 같아선 말이 아니라고......

저금리 대출세일이 경쟁적으로 서민들에게 까지 파고 들어 저마다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승용차와 가전제품 등 일체의 살림도구도 할부구매로 몽땅 바꿔었으니 갑자기 삶의 질이 좋아진 것은 좋은데 ....

하지만 미래의 수익까지 앞당겨 집행함으로서 얻어진 삶의 질향상은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내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외 모르는지.....

가게부채 총액이 450조에 육박하고 있으니
빚이라면 소라도 잡아먹는다는 옛말이 아직도 우리의 민족성을 대변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금리를 앞세운 이같은 내수경기 진작이 수출산업의 대외 경쟁력 배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장래의 국가경제 운영에 큰 폐해만 남길 것은 뻔한 이치임에도 우리의 위정자들은 당장의 인기관리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국내산업의 대외경쟁력 배양은 우리민족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첨예한 현안과제인데도
위정자나 기업가나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저마다 보신주의에 빠져들고 있으니 큰 문제다.

주 5일 근무제시행으로 레저를 즐기자는 판인데 굳이 기업 확장하여 마음 고생할 필요없고
허리띠 졸라매고 고통 분담시키는 정책 역시 환영받지 못할 것이 뻔한 상황이니.....

결국은 우리국민의 생각과 가치관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합당한 일자리를 찾아 독립해야 할 우리네 자녀들이 졸업후에도 도서관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그런데로 풍요속에 성장한 자녀들인데 궁핍함을 경험케 한다면 어찌될까?

고학력 청년실업과 노령화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텐데 앞으로가 큰 걱정이로다. 고통 중에 신음하는 아빠는 그렇다할 지라도.... 우리 아이들만은 잘 되어야 하지 않은가?

언양 나가는 차를 타려면 10분 정도 밤길을 걸어 나가 한참을 기다려야 할 생각을 하니 애라 모르겠다 주차장에서 막 나가려고 하시는 분에게 언양까지 부탁해 본다. 그 분들 부산으로 간다면서 받아준다.

고맙게 얻어 타고 언양까지 나가 터미날 부근 평소 개발해 놓은 돼지국밥 집에서 저녁 들고 울산행 직행버스에 오른다(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