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人生의道

엉뚱한 길로 빠진 것 같으면 합리화를 고집하지 말고 즉시 되돌아가야

서로조아 2014. 12. 24. 10:35

거듭난 자는 그 심령에 하늘로부터 온 겨자씨만한 것이 있을 뿐 여전히 옛사람과 동일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말씀을 자기 위주로 곡해하여 스스로 완전해진 줄로 알고 함부러 언행하는 자가 있고 그로 인해 형제 자매들이 상처받고 실족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엄벌에 처한다는 기록도 있는 것 같은데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옛사람에 속한 종교적 습성에서 이런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며 부추기고 동참하지 않는 자를 은근히 압박한 일은 없었는지?

우리 교회 모임 초기분위기는 이렇했던 것 같다.
방송으로만 들었던 성경강해를 직접 들어보고자 몰려 들었으니 수용할 장소가 여의치 않아 학교 강당을 빌여 모였다.
마루 바닥에 방석을 깔고 2시간 이상을 추위에 떨었지만 말씀이 워낙 좋으니 여기 저기서 녹음도 하고 ..

구름같이 몰려든 자들이 권목사님 성경강해를 통해 종교적 관습에 의한 신앙생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종교의 족쇄에서 풀려난 분들이 속았다며 주변사람들에게 일께워 주는 가운데 부지중에 선생하길 자청한 자도 많았던 것 같다.

여러형제자매를 향하여 때가 임박했는데 말씀만 듣고 흩어지면 되겠는가?
뭔가 모여서 일을 중심으로 교제생활을 이어가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모임장소를 마련하는 문제로 부지 구입을 알아보고 건축헌금을 모으고
의사 중심으로 형성된 모임에선 병원사업을 의논하고,
종이비누가 장래 호텔 등지에서 각광을 받을 것이라며 사업화를 논의하고 ...
이같은 움직임을 납득할 수 없어 모임을 짐짓 외면했던 형제 자매들의 마음은 어떻했겠는가?

권목사님께서도 이같은 움직임을 의식하셨는지 교회는 주님의 것이니 우리들 생각대로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의 말씀을 주신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을 통한 형제 자매간의 교제가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날로 고조되자 권목사님께서도 형제자매들이 함께 움직여 가는 곳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으니 여러 전도자분들도 같은 취지로 동참하다보면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방황하는 성도들을 이해시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을 통한 형제자매간의 교제의 결과가 오늘날과 같다면 과연 주님께서 이끌어가신 사업으로 볼 수 있겠는가?

왜 사업주 명의를 교회단체로 아니하고 개인명의 그것도 한사람 가족 명의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들이 힘을 모아 만든 사업일진대 당연히 성도들 단체명의로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동안 납득할 수 없는 문제들로 실족한 형제 자매가 많았다면?
구원받았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았는지?
형제자매간의 교제의 필요성을 앞세워 시작된 사업들이 오늘날과 같다면 분명 주님과는 무관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들 모두를 드러내 놓고 주님께 석고대죄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은근슬쩍 넘기려 한다면 과연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권목사님께서도 우려의 말씀을 주시며 주님께 맡기고 기다려 보자 했건만 ..
믿음이 성숙되지 못한 형제 자매를 끌여 들여 사업을 성급히 벌리기 보다는 아무리 필요성이 있다할지라도 좀더 시간을 갖고 주님의 판단에 맡기고 기다려 보자 하신 것 같은데...
그만 신뢰하는 자의 압박을 냉정히 물리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오늘날까지 족쇄가 된 것은 아닐런지?

그때 벌여 놓은 병원사업이 건물만 짓고 30년이 넘도록 방치되고 있으니 과연 주님께서 이끌어가신 사업으로 볼 수 있겠는가?

허물을 덮으려고 합리화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경거망동으로인해 주님의 구속사업이 뿌리체 뽑히고 세상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되돌아 보고 석고대죄해야 할 것 아닌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주님 아닌가?
사람들을 의식한다면 정상적인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구원받았다는 것만으로 온전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 잘못됨이 없다고 합리화를 고집하며 아무런 뉘우침이 없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주님은 스스로 지혜롭다며 오만한 자보다는 솔직히 드러내어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긍휼히 여기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