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春

가지산 북능을 힘겹게 2003427

서로조아 2013. 4. 10. 14:11

 

 

 

 

 


여성산꾼 흔적 쫏다가 가지산 북릉을 힘겹게

 

2003. 04.27(일), 맑음.

석남사(0810)-중봉(1010)-가지산정산(1040)-아랫재(1150)-합수점(1300~1400)-북능-가지산정상(1700)-석남사(1910)

 

 


 

지난번 가지산 정상에서 북능 타고 운문사로 하산하여 운문사 주차장에서 차을 얻어 타는 행운으로 모처럼 일찍(16:00) 귀가했다.

그날 바로 앞 좌석에 50대중반 여성 산꾼이 계시기에 어디로 다녀 왔습니까 물으니 석남사에서 올라 가지산 정상거쳐 아랫재로하여 심심이와 학심이 계곡 타고 석남사로 다시 넘어 왔다고 하신다.
상당히 긴 코스 같은데 이렇게 일찍 귀가한다면 나도 한번 그 길을 걸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그 곳을 찾아보기로 작정하고 아침 일찍 석남사행 직행버스에 오른다(07:05).
석남사에 도착(08:10)하자마자 곧 도착될 밀양행 버스로 갈아 탈 몇분 빼놓고는 대부분이 기념비쪽 들머리로 몰려간다.

지난번 산행시 아줌마가 알려준 능선길로 가면 석남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했지
이번에는 그 길로 올라보고 싶은 생각에 갈림길을 살피며 15분쯤 오르니 뚜렷하지는 않지만 길 같은 곳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0분 정도 들어가니 물소리가 나면서 중간에 리본도 반갑게 맞아준다.

어제 농수산물 시장에서 산 참외를 계곡물에 씻어 맛보니 맛이 달다. 작은 것이 흠이지만...
계곡을 따라 조금 올랐다싶은데 들리던 물소리도 없어지고 갑자기 사방이 잠잠하다.
계곡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흐르는 물이 없다.
이처럼 산 아래부분만 물이 흐르고 중간지점부터는 계곡일지라도 물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석남사쪽 계곡의 공통점이다.

계곡 건너편으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그 길로 능선길에 오르니 석남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오고 멀리 정상과 쌀바위도 보이고 계곡아래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매우 상쾌해진다. 조금 더 오르니 전망 좋은 바위도 있다.

 



이 능선길은 중봉 밑으로 이어지는데 매우 급하여 평소 다니던 길에 비하여 초반부터 에너지소모가 많은 것 같다.
게다가 나뭇잎이 아직 어려서 뜨거운 햇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인지라 덥고 간혹 부는 바람마저 시원한 기색이 없다.

드디어 석남터널로부터 가지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낮익은 길과 마주친다.
다른 때보다 30분정도 늦어 부지런히 걷지만 오늘은 웬지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힘들게 정상(해발 1280m) 도착(1040)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방을 관망하고 있다.
나도 오늘의 산행코스를 살피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산행경험이 많아 보이는 분에게 물어본다. 아랫재로 내려가 심심이와 학심이 계곡을 거쳐 쌀바위로 올라 가지산 온천까지 몇 시간이나 소요되는지?

 

 

 

 

 

 

 

 

 

 

 

 

 

 

 

 

 

 

 

 

 


지금부터 시작해도 17:00까지는 운문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코스단위로 소요시간을 어림 잡아보니 큰 문제만 없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정 문제가 되면 합수점(심심이와 학심이 두 계곡이 만나는 점)에서 운문사쪽으로 가면 되지 하고 곧바로 백운산과 아랫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발빠르게 달려간다.

 


혹시 운문산 정상에 DS5FTI님이 계시는가하여 CQ CQ 여기는 가지산 정상 HL1TQR하면서 불러 보았지만 잠잠하다. 잠시후에 DS4LKQ라는 분이 HL1TQR님 계시느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가운 생각에 가지산 정상에서 운문산 방향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아랫재로 가는 중이라고 현재의 위치를 알리고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으니 광양에서 산악회와 함께 이제 막 가지산 정상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분들도 내가 방금 지나쳐 온 길를 뒤따라 아랫제에서 운문산 정상 거쳐 석골사로 하산하실 거란다. 오늘 산행이 여유시간이 없는지라 좋은 산행되시라는 인사로 교신 종료하고 가던길을 재촉한다.

이내 호박소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저만치 백운산의 암봉도 가깝게 보인다.
서서히 내리막으로 접어 드니 드디어 아랫재의 조그만한 오두막집이 보이고 두서너 분이 휴식을 취하고 계신다.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운문사로 이어지는 심심이 계곡길로 접어든다.(11:50)

엊그제 비가 온 뒤로 초반부터 억새숲 길이 질퍽 질퍽하지만 길은 그런대로 보인다. 조금 지나니 여기 저기서 심심이 계곡수의 발원지로부터 물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고 합수점 도착해서 점심 먹을 계획으로 달려가는데 등산로가 온통 시냇물이 흘러 구분이 안 된다. 다행히도 리본이 가끔 나타나 안심시켜 준다.

징검다리 걷듯이 돌을 밟아가며 한참을 내려가니 계곡가의 넓직한 바위가 잠시 쉬어 가라고 한다. 시원한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가 보니 이내 온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시려온다. 참외 하나 먹으며 물 밖으로 뺏다가 다시 집어 넣기를 서너 번 하니 발이 생기를 되찾는 것 같다.

바로 앞에는 계곡수의 엄청난 물이 은 구슬을 뿜어내며 힘차게 내려간다.
저처럼 빠른 물에 하나라도 빠트리게 된다면 바로 끝장이다하는 생각을 하니 조심스러워진다. 이내 발을 말리고 일어선다.

이제부터는 제법 널따란 길이 나타나는데 한때 사람이 살았던 부서진 건물도 눈에 띈다. 차량이 다닐 정도의 제법 순탄한 길을 달려 내려 오니 저만치 2주전에 들렀던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 학심이 계곡길을 타야 하는데 깊은 산중이라 방향 감각이 멍하다.
이쪽 저쪽에서 시냇물 소리만 요란하고 사람은 하나도 만날 수 없으니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시냇가에 발을 담구고 점심을 상추쌈과 된장으로 맛있게 먹는다.
사실 산취나물의 특유한 향취를 맛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오는 길에 하나도 눈에 뛰지 않아 상취로 대신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곡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길과 계곡 옆 길에도 색바랜 리본이 보인다.
조금 올라 가보니 더 이상 리본도 눈에 띠지 않고 길다운 길도 보이지 않는데 온통 낙엽만 수북하다.

순간 지난번 별거 아닌 곳에서 고생하며 헤메었던 생각이 그만 발길을 돌리게 한다. 시간도 오후 2시인데 이곳에서 헤매이면 그야말로 큰 일이다. 밤을 지세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식량도 없는데...

무조건 뒤로 돌아 왔던 길을 찾아가는데 그만 방금 왔던 길을 걷는다 싶었는데 다른 길이다.
다시 뒤로 돌아 유심히 길을 살피니 산능선 쪽으로 낙엽 쌓인 길이 보인다. 지난번 내려왔던 북능을 타고 되돌아 갈 생각으로 어렴풋한 소로를 찾아 오른다.
북능 초입구간은 워낙 급경사 길인지라 조금씩 쉬어 가기를 반복한다.

정상으로 올랐다가 석남사로 내려 가야 하니 쉴만한 여유가 없다.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낮잠이라도 잠시 즐겼으면 하는데...

가끔 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주변을 살펴 보니 저 멀리 사리암 주차장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는 주변을 살피면서 갈 수 있어 마음이 안정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학심이 계곡길만 고집하다 그만 물 준비를 못했다.
점심 먹으면서 바로 앞을 풍족히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다 보니 그만 물 생각을 잊었다.

시원한 물 어디 없을까? 생각도 해 보지만 이곳은 능선길이고 내려 갈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물이 없음을 알게 된 후부터는 웬지 모르게 입안이 더 더욱 타 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보온통에 커피 타 먹을 물이 전부다. 앞으로도 2시간 이상 올라야 하는데....

눈썹에 맺힌 땀은 방울이 되어 안경면으로 떨어져 시야를 흐리게 하니 자주 맨손으로 닥아 낸다. 눈속으로도 들어 갔는지 눈이 쓰린다.

로프를 잡고 가파른 길로 오르는데 바위면을 따라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는 것이 마음을 끈다. 잔을 대보았지만 워낙 뜸뜸이 떨어져 바닥만 적실 정도,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고인물은 참새 오줌 정도다.

에라 참아 보자 빨리 정상에 올라 얻어 마시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바위 능선길을 이리 잡고 저리 잡으며 기어오른다. 올라 갔다가 내리막 바위로 접어 드려는 순간 이마에 뭔가 확 부닥친다.

 


경사진 아래만 보고 내려 가다보니 사람 눈높이 부분에 부러진 소나무 가지 하나가 있음을 몰랐다. 그곳에는 리본도 붙어 있었지만.....

이런 것에 눈이라도 부닥치면 매우 위험할 것 같아 잘라 내 버리면 좋은데 손으로는 안 된다. 톱이 있어야 한다 그만 포기하고 다음 산꾼에게 똑같은 사고는 없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아래로 향한 로프를 타고 내려 허리키만한 산죽이 밀집한 지대를 헤집고 오르는데 나도 몰래 이마가 근지럽다. 흠쳐보니 뭔가 끈적거린다. 보니 손바닥에 피가... .

이게 웬일인가 했는데 조금전에 부닥치면서 상처가 난 모양이다.
반창고도 없는데 날 테면 나 보라 방치한 체 지친 발걸음을 계속 옮겨간다.
늦어도 5시까지는 정상에 도착해야 하는데 벌써 4시가 넘어 있었다.

커다란 바위능선을 오르니 제법 정상이 가까운 듯하다.
또 하나 넘으니 드디어 저 멀리 정상의 움막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서 30분 정도 가면 될 듯 싶다. 이젠 안심이다.


정상 부근에는 샘터도 있다는데 샘터부터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낙엽 쌓인 길을 열심히 오른다.
그런데 아무리 옆을 보아도 샘터로 이어질 만한 길은 아니 보이는데 이내 움막집이 코앞이다.

움막집 주인장은 오늘 하루 장사를 다 끝냈는지 이것 저것 안에서 정리하고 계시는 것 같다. 물 한 잔 얻어 단숨에 마시고. 한잔만 더 주시지요 하면서 두 잔 째도 단숨에...... 물잔이 이리도 작은 지,

한 잔 더 먹고 싶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건넨 후 이곳 주변에 샘터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주인장의 없다는 말에 그만 공짜로 먹은 물이 마음에 걸린다.

주변을 둘러 보니 아무도 없다. 움막집 주인장도 어서 하산하라 하신다.
산중에서의 석양시간대는 매우 빠르게 주변이 어두어진다.
주인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말로서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하산하는데 전혀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아침에 올랐던 길이 급경사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길로 내려간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계곡물 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발원지의 시원한 물을 서너 잔 벌꺽 벌꺽 마음껏 마신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계곡길인데 낙엽마져 수북히 쌓여 어두워지면 길을 잃기 쉽다.
다행히도 오래 전에 달아 놓은 듯한 리본이 길을 따라 어렴풋하게 드문 드문 눈에 띄지만 불안한 생각에 급경사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드디어 석남사 일부가 보이며 계곡물 소리도 요란하게 들려온다.
다 왔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는가 싶었는데 저렇게 세차게 흐르는 넓은 계곡물을 어디로 넘어가야 하나 염려스런 눈초리로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데 가능한 곳이 보인다.
그리로 이동하여 계곡물에 잠긴 돌을 징검다리 삼아 조심스럽게 건넌다.

 


이곳은 비구니들의 수도하는 장소인지라 등산객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조용히 발을 담그고 얼굴의 땀도 씻어 내니 상쾌한 기분으로 피곤한 중에도 조금은 생기가 돈다.

석남사 외부와 이어지는 길은 완전 폐쇄되어 하는 수 없이 주변의 석축으로 기어 올라 경내로 들어간다.
조그마한 삼층 석탑과 제법 큰 삼층 석탑이 같은 경내에 보존되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소개하는 내용을 읽어 보는데 예전에 감은사지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다.

불교 문화가 융성했던 통일 신라시대의 유물인지라 조각 양식이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주변 경내를 살펴보다 비구니 한 분과 마주쳐 나도 합장하며 침묵으로 인사를 나눈다. 걸음걸이로 보아 연세가 많으신 것 같았다.
중앙의 대웅전 내부도 문이 열린 체 젊은 비구니 한 분이 저녁 예불을 준비하고 있는듯하다.

그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을 빠져나오니 석남사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왕에 놓친 직행버스인데 좋은 공기속에 쉬었다가지 하는 생각으로 발을 벗고 밴치에 누워도 본다.

석남사을 7시10분에 출발하여 언양 터미널 입구 돼지국밥집에 들러 저녁하고 울산행 직행버스를 타니 저녁 8시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뻐근하다.

여느 때처럼 냉 온탕으로 근육 피로를 풀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동네 부근의 목욕탕으로 가본다. 영업 마감시간이 다 되어 가지만 한시간만이라도 좋다는 기대감으로....

입구 안내문을 읽어보니 24시란다.
제빨리 벗어 던지고 따뜻한 온탕에 퐁당하니 역시나 온 몸이 사르르.........

아는 것도 나름이지 여성분이 넘었다고 가볍게 여기고 초행 길을 아무런 준비없이 덤벼 들었다는 것은 나의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평소 몸소 체득한 정보만이 위험을 극복케 하고 목표지점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 남이 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지 하고 철저한 준비없이 그것도 단독으로 덤벼 든다는 것은 자칫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로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남이 하는 일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곤란에 처할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패라듯이 나 자신과 주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처함이 성공의 전제 조건임에 틀림없다.

따뜻한 탕속에 몸을 담그고 지나온 길을 추억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