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春

반백이 되어가는 아내와 오랜만에 주왕산을 2003.0406

서로조아 2013. 4. 10. 14:15


 


반백이 되어가는 아내와 오랜만에 주왕산을


2003. 04.06(일), 맑음.

대전사(08:10)→주왕굴(09:00)→급소대전망대(09:30)→제1폭포(10:00)→제3폭포(11:00)→내원분교(11:30)→대전사13:30)






부부가 함께 한지 2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신혼 여행을 빼놓으면 한번도 여행다운 여행은 즐겨보지 못한 것 같다.

되돌아보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하는 자책섞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날들은 모두가 그렇했던 것처럼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에만 몰두해야 했고 짬만 나면 연로하신 장인장모님 계신 강릉 산골 처가집만 생각했으니 그렇게 됐지 않았나 하는 위로도 해 본다.

사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설악산과 소금강에 갔던 일을 회상하면 그때도 산행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처녀 총각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진부령 넘어가는 버스를 타고 백담사입구 용대리에서 내려 앞가슴에는 무겁고 커다란 녹음기(보턴식)를 차고 백담사 계곡길을 우리 둘만이 손에 손잡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걸었지

옆에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와 우리들의 노래소리가 함께 어울려 자연속으로 꿈같은 여행을... 지금와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참으로 우습기도 하지만 우리는 진정 순박했고 꿈과 힘이 넘치는 인생에 한번밖에 없다는 청춘시절이었으니.....

드디어 백담사가 옆에 다가왔지만 갈 길이 먼지라 대충 둘러보고 오세암 가는길이라는 안내판에만 의지한체 마등령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초행길임에도 두려움없이 마냥 젊음을 불태웠었지

한참을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깊고 조용한 산중에 오세암이라는 한적한 암자에 도착했지만 오늘 안으로 마등령을 넘어 설악동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구불구불 급경사 길을 열심히 올랐었지

그때는 당신도 날씬하여 보통 수준이상으로 산행을 잘해 더 더욱 내 마음을 사로 잡았었는데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고 비선대쪽으로 하산, 캄캄한 시간이 되서야 신흥사에 도착.

지금 생각하니 역시 젊은 혈기로 가능한 산행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때(1980)의 우리는 오늘날처럼 등산 장비(운동화, 일반 가방)도 없었고 자주 산행한 적도 없었는데 설악산을 횡단하는 장거리 산행을 그것도 초행길을 하룻만에 주파하겠다고 덤벼들었으니...

속초행 버스에 올라 단풍으로 익어가는 설악산의 비경과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차창 밖의 가을밤을 가르는 시원한 공기로 지친 육체는 어서 빨리 저녁을 먹어야지 하는데 당신이 개발해 놓았다는 속초항 오징어 무침 참으로 맛있었지.

그뿐이랴 오색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급경사길을 기어 대청봉에 올라 동해의 푸른 바닷물과 속초시 그리고 멀리 아련히 보이는 오대산 줄기를 내려다 보며 즐거워 했었지.

소금강에 가서는 사나이다움을 자랑이나 해보려고 웃통을 벗다가 안경이 함께 벗겨져 시냇가 바윗돌에 부딪쳐 그만..... 아마 그때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잠깐 정신을 잃었나 봐

이번의 주왕산행은 그야말로 오랜만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슬픈 생각도 든다. 우리의 젊음이 벌써 중년으로 접어들어 반백을 넘어서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도 우리는 예전 모습 그대로 산행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된장찌개로 간단히 오늘의 활동 에너지를 충전하자 마자 서둘러 산행길에 오른다.


입구부터 웅장한 바위 봉우리가 예전에 그림으로만 보던 주왕산에 와 있음을 확인케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전사라는 고찰이 조용히 우리를 맞아준다.

경내를 둘러보니 워낙 오래된 고찰인지라 역시 화려함보다는 웬지 주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른 아침이라서 찾는 이가 없어서 더욱 그러했겠지...

계곡은 온통 용암이 흘러 내리다 굳어진 죽처럼 검은색의 특이한 바위들이 흐르는 물결로 숨겨진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다. 등산로 옆의 바윗돌도 지금까지 본 것과는 전혀 다른 형상을 띠고 있다.

조그맣게 각진 돌들의 개체가 모여 하나의 큰 바위을 형성하고 있으니 심지어 지금도 세월의 흐름에 하나씩 잡아당기면 빠져 나올 정도로 계속 분리되어 아래로 돌무더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도 특이하다.

첫번째 다리를 건너 주왕굴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오르니 바로 주왕암자가 나타나고 암자문으로 들어가 비좁은 바위틈새 철계단을 오르니 끄트머리에 조그마한 동굴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중국의 주왕이 조국을 회복하려다가 그만 새로운 세력에게 역적으로 몰려 이곳까지 도망쳐 숨었다가 중국 당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신라왕은 장군 무장으로 하여금 주왕이 숨어있다는 굴을 찾아내게 하였으니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기록을 본다.

산허리를 돌아 급소대 전망대에 오르니 한눈에 들어오는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소대를 보면서 높은 산도 아닌데 이렇게 좁은 계곡을 사이로 특이한 바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곧 돌덩이를 굴러 떨어 뜨릴 것만 같은 갚파르게 솟구친 급소대 밑을 지나 계곡길로 내려서니 폭포소리가 들려온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니 이곳 또한 차량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의 바위틈사이의 협곡이다.
철재다리에 의존하여 간신히 사람만이 지나간다. 아래로는 계곡물이 장구한 세월 흘러가면서 수로를 맨들맨들하게 만들어 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곳을 지나니 평지가 나타나고 세차게 흐르던 시냇물 소리도 갑자기 잠잠해 졌다. 주변의 산들도 암봉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나즈막한 일반 산이라 하산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매우 한적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주저하다 되돌아가지만 제3폭포와 내원마을이 있다기에 그곳까지 둘러볼 욕심으로 발걸음을 제촉한다. 한 15분정도 냇물 따라 한적한 길을 걸으니 시원한 흰색 은구슬을 쏟아내는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온다.

 




폭포수 옆길로 내려가 아름다운 폭포수를 눈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남겨 놓고 바쁘게 최종 목적지를 향한다.
정겨운 징검다리를 건너며 손에 손잡고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의 주인공처럼 달려간다.

이윽고 내원마을 안내판이 보이고 곧바로 70세가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분은 이 동네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버섯을 광주리에 모아 놓고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팔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구경하고 몸에 좋으니 사가라고 하신다. 이것저것 무엇이냐고 물어보다가 간에 좋다는 운지버섯과 달래 더덕을 팔아준다. 모두 25000원어치다. 어렴풋하나마 순수했던 그 옛날 어머님의 향취에 젖어 보고픈 충동에 사로집힌다.

마침내 내원마을 분교라는 오래된 간판과 함께 통나무집 한체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옆에는 허수름한 낮은 집들이 몇채 보인다. 이곳은 총 가옥수가 10여호 정도라 전기도 안들어 온단다. 촛불로 밤을 밝히고 나무를 때며 살기에 집 내부가 연기에 그을려 거무스름하다.




집마당에 도토리묵과 특수한 이곳만의 음식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한 쌍의 부부가 동동주에 도토리묵을 먹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우리는 운전해야 하기에 우리는 그곳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차를 주문한다.

씁쓰름하고 톡특한 향기로움을 음미해 가며 주변을 살피니 위로는 푸른 하늘이요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여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그곳의 정취에 젖는 것도 잠시 우리는 이내 돌아 서야했다. 다음에 또 찾아 오겠노라고 그곳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곳에서 일박하고 산 정상을 거쳐 하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산에 가서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산에 간 것이 아닌 것처럼 아쉬움과 궁금증이 남아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언젠가는 이곳에 또 오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개울가의 탐스런 버들가지를 보며 그 옛날의 추억속에 봄의 향기를 만끽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대전사 밖의 속세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든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내려오는데 여러 가지 색다른 그림(인두화)을 나무판에 그려 걸어 놓은 모습과 바로 앞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분을 보면서 이곳에 온 기념으로 하나 사볼까 하는 욕심을 내본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이 외에도 호랑이, 초가집 그림을 원목판에 그려 놓은 것이 좋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가훈하나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으로 여쭈어 보니 연락처를 주며 택배도 가능하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냥 오기에는 아무래도 주왕산에 왔으니 그 유명한 주왕산 삼계탕을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주왕산 삼계탕이라는 간판은 아니 보인다.

물론 입구 음식점에서도 백숙만큼은 팔고 있었지만 약수로 빚은 것이라고는 생각이 안들어 약수로 만든 주왕산 삼계탕을 먹고픈 욕심으로 주왕산을 빠져 나와 신천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신기하게도 10호 되는 길가의 음식점이 모두 각자의 약수터를 만들어 놓고 자연스럽게 약수물이 퐁퐁 솟구쳐 주변이 온통 철분으로 인해 벌겋게 물들어 있고 물맛도 여지없는 오색약수나 방아다리 약수이다.

이런 물로 빚어야 진짜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는 길에 음식점 아줌마의 말도 닭과 철분썩인 약수는 궁합이 잘 맞아 이곳 사람들은 삼계탕만 판다는 말도 생각난다.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먹어보자는 식도락가 특유의 기질을 부려 보는데 우리 그 사람은 별것 아닌 것처럼 그놈의 삼계탕 때문에 어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느냐는 말로 나를 당황케 한다.

그래도 오늘은 나의 갈빗대을 보충해주는 그 사람의 생일인데 그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맛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텐데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우리를 태운 겔럽퍼는 이미 그쪽으로 향한 한적한 길을 고속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길가의 음식점이 별로 없고 오로지 한적한 시골길의 연속이니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신천약수터 처음 들렀던 그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누님집이나 처갓집인양 또 다시 왔어요. 주인 아줌마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어서 그 맛있다는 삼계탕 하나 해주시구려,




우리 그 사람은 역시 별로 인지 반에 반 토막을 나에게 더 먹으라고 건넨다. 양은 좀 많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면 좋으련만....

나 혼자 배불리 먹고 나니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어쩌랴 이곳이 주왕산 삼계탕의 원조들만 모인 마을인데......
들어갈 곳 없을 정도인데 커피 한잔 마시고 주인장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안녕을 고한다.

 구에 있는 삼사해상공원과 영일만 호미곶 유채밭을 들러




☆동해안을 따라 구룡포 가는 길에 만난 주전해

변은 온통

울산 주전해변은  아름다운 몽돌로 가득


같은해 10월 어머님과 영원한 이별하기 바로 전날 밝은 보름달이 휘엉청한데 어찌나 마음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이날만은 잠이 오지 않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허공을 맴도는 것처럼...


밤 10시가 넘어 깊어가는 밤길을 겔러퍼를 몰고 정자해변 거쳐 주전해변 몽돌밭에 나홀로 앉아 바로 앞 몽돌밭 돌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달도 보고 한참을 앉았다가 돌아 왔는데....

바로 그곳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