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秋

북한산 쪽두리봉→문수봉→형제봉2006924

서로조아 2013. 4. 12. 15:46



북한산에도 가을기운이 감돌고

2006.09.24(일, 맑음)

불광역(10:00)→들머리(10:20)→1릿지(10:30)→2릿지(10:40)→쪽두리봉(11:00~20)→향로봉(12:10~30)→전망대(12:40)→비봉→사모바위(13:00)→승가봉(13:30~40)→두꺼비바위→문수봉(14:00~15:50)→대남문(16:00)→대성문(16:20)→작은형제봉(17:00)→큰형제봉(17:10)→형제봉매표소(17:35)→뉴본사우나(18:00~20:00)




지리산 갔다 온 뒤 무슨 일을 했는지 2주 동안 산행도 못하고...

일병 달고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은 아빠 핸드폰 가지고 친구 만난다며 허구헌날 자정이 훨씬 넘어 들어오니 얼굴 보기도 힘들다.
날씬해져서 믿음직해 보이지만 예전처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처럼 쉬러 온 녀석에게 틀에 박힌 주문을 강요하기도 그렇고...

휴일 외박 나온 딸은 어느새 중위 달고 소대장 하니 동생이 말 안 해도 이것저것 잘 챙겨 주고 언제나 동생의 대변자다.
아들 녀석 외할머님 뵙고 귀대한다니 집사람도 은근히 반가워하며 친정으로 달려가고...

오늘도 파란 하늘이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야겠다.

문수봉 가본지도 오래 되었으니 불광역에서 안 가본 능선으로 올라 보는데 초입부터 가파른 암벽 구간이다.
바위 전체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미끈하고 신의 손자국인지 둥근 골이 파인 곳도 있다.













저 위로 보이는 암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데 맨손으로 몇 명의 산님이 오르고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순간의 실수로 사망 아니면 중상인데 굳이 목숨 걸 필요 있겠나 아무리 스릴도 좋다지만...





곧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치에 낮익은 구멍바위가 보이더니만 곧바로 족두리봉이다.









오늘도 족두리봉 내려가는 암벽엔 산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지체가 심한 편이다.
평소 다니지 않는 수직 암벽으로 우회하는 분도 계시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느껴진다.









너무 겁먹고 주저하는 것도 문제지만 나도 할 수 있겠지 하며 별 생각없이 덤벼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도전정신도 좋지만 자연을 제대로 인정치 않고 합당한 준비 없이 의욕만 앞세우면 곧바로 잡혀간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릿지 겸용이고 튼튼해 보여 샀는데 오늘 알아보니 너덜구간용이지 이런 곳은 아니란다.
바닥창을 손톱으로 눌렀을 때 자국이 나야 한다는데 내 것은 딱딱한 편이다.

향로봉 암릉 오르는 길목은 추락 사망사고가 잦다며 통제한다.









우회길로 가다가 향로봉 암릉에 오르니 위험하지만 비경이다.
이런 곳에서 빼어난 비경에 취하고 곡주에 취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길로 가기 쉬울 것 같다.

















한 눈에 들어오는 의상봉 능선과 문수봉 그 넘어로 솟구친 백운봉과 노적봉은 첩첩이 암봉이라 신선의 세계 같고 비봉과 사모바위도 앞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고 특이하다.











▲향로봉 정상에 오르자마자 일송일영 형수님께서 반겨주시고 멋찌게 담아주셨지만 비경에 취하다보니 다시 뵙지 못하고...

















승가봉 하늘문 통과하니 의상봉 능선이 올록 볼록 암봉들을 만들며 올라와 가장 높은 곳에 문수봉을 솟구치고
남쪽에선 사자능선 타고 올라온 암봉들이 보현봉을.... 갑자기 신선의 세계로 초대받은 것처럼 황홀하다.











바위에 누워 이곳저곳 살펴보니 봉우리마다 하나둘씩 가을 옷이 입혀지고 있다.
세월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자신의 때를 정확히 알고 그 때마다 필요한 일들을 엄정하게 수행하는 것 같다.

여름 내내 수고했던 나뭇잎도 이젠 사명이 끝나 가는지 몸체로부터 분리될 준비를 하는 것 같고....











우리들은 저들의 이별을 앞둔 모습을 보면서 좋아라 하지만 솔직히 나뭇잎 입장에선 서글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나무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영양소를 만들어 바쳤건만....

하지만 어쩌랴 창조주가 정한 규율이니 순종할 수 밖에....
부모로서의 모든 일을 끝낸 노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단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런지....



















문수봉 정상엔 무선통신 동호인 안테나가 보인다.
구기동 내려다보는 금복주 두꺼비 만나보고 서둘러 문수봉 정상을 찾아간다.

















모자 쓴 모습에선 젊음이 느껴지지만 벗고 보니 허연 수염이 여기저기...
점심때가 지났으니 두꺼비도 몇 마리 드신 것 같고...

저멀리 주능선 끝으로 우뚝 솟은 백운봉, 노적봉, 만경대와 광활한 산성계곡이 함께 하니 앉자마자 둘이서 곡주를 연거푸.....
그동안 무슨 일하며 지냈는지가 최대 관심사항인 것 같다.

젊었을 때 땀 흘려 세끼 해결되면 이젠 쉴만한 권리도 있는 것 아냐 하며 서로를 자위해 본다.
덫에 걸리지 않아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야지...

몇 해 동안 꾼들이 설치며 돈 벌게 해준다니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자들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계약금만 들고 달려 가고....
정치꾼과 업자는 원래 궁합이 잘 맞는 법인데 저들이 합세하니 지방마다 혁신도시 의료도시 행정도시로 조만간에 우리도 선진국이라 할 만하겠지....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이고 이상은 이상일 뿐인데
순박하고 이상향을 그리는 백성들은 매번 저들의 뛰어난 언변에 박수갈채를....

왕과 신하, 사장과 직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가 평등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좋게 들리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지.

자연도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수직적인 먹이 사슬이 유지되는데 그것을 부당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오랜만에 만나 이상한 화재로 번져 해지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