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冬

덕유산 육십령→남덕유→향적봉→백련사 2006.0203

서로조아 2013. 4. 12. 20:09





겁 없이 올랐건만 덕유산은 여전히


2006. 02.03~04(맑음, 서풍, 영하20도)

02월 03(금)
육십령(07:50)→할미봉(09:20)→교육원갈림길(11:00)→전망대(12:30~50)→서봉(13:35~45)→남덕유갈림길(14:50)→월성재(15:40~50)→삿갓봉갈림길(17:30)→삿갓재대피소(18:00)

02월 04(토, 입춘)

삿갓재대피소(07:30)→무룡산(08:20)→동업령(10:05)→백암봉(11:15~25)→중봉(12:05)→향적봉대피소(12:40~13:20)→향적봉(13:30~40)→백련사(15:20~30)→삼공리버스정류장(16:50)








지난해 11월 중봉에서 남덕유 능선을 바라보다가 여러 산님의 애정이 깃든 삿갓재 산장도 볼겸 상고대와 눈꽃이 만발할 쯤에 다시 찾아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설이 지나고 입춘을 맞이했으니 겨울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나홀로 초행길인지라 조난에 대비하여 1400g 거위털 침낭, 메트레스, 콜맨버너, 4끼 식량과 연료로 완전 무장하고 집을 나서니 청년시절로 되돌아 간 기분이다.

전주역에서 시외버스터미날쪽으로 15분 걸어가니 두산아파트 지하에 24시 사우나가 보인다.
그곳에서 하룻밤 보내고 1.8리터 패트병에 식수 챙겨 05시에 터미널로 달려가 보니 유일하게 24시 편의점만 불이 밝혀 있다.

일단 컵라면으로 때우고 서상까지 매표한후 기다리는데 육십령 경유 대구행이 06:10 출발이다. 출발 15분전에 불이 밝혀진 김밥집에서 단무지 없는 김밥 3줄을 산다.


나홀로 승객을 태운 버스는 시원한 도로를 달려 고개넘어 산을 돌아가는데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이산이 어슴프레 보이고 진안과 장계에서 한두분 태운후 육십령을 넘으니 아침 햇쌀이 눈부시다.



고갯마루 바로 옆에 붙어있는 리본들의 안내를 받아 능선길로 오르니 바람이 세차지만 소나무 능선길은 돌하나 없이 부드럽다.

첫번째 바위봉인 할미봉에 오르니 우측 아래로 덕유교육원과 영각사 그리고 황점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보이고 서봉과 남덕유는 마치 희말라야 고봉처럼 우뚝하다.



▼저 앞에 보이는 할미봉에 오르면 서봉과 남덕유가 바로 앞이고 뒤로는 지리산까지도









급경사 바위길로 내려서니 이름 모를 동물이 자기 발자국만 따라 오라며 교육원 삼거리까지 앞서 간다.









서서히 급해지는 등로를 따라 제1봉에서 내려다보니 백두대간상의 깃대봉 영취산 백운산 함양군쪽으로 괘관산 장계쪽으론 장안산도 가름되고 서봉과 남덕유는 손에 닿을 듯이 가깝다.


산하가족 선연님 2017.10.21 백두대간 백운산에 올라 담아오신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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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질수록 상고대가 만발한데 간간이 세찬 바람이 입춘이 왔다며 나뭇가지를 뒤흔들어 깨우고 입고 있던 흰옷을 몽땅 벗겨 하늘로 날려 보낸다.



바람을 피해 숨어있는 나무들은 여전히 상고대 축제중이다.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산죽을 헤치며 이런저런 비경에 취하다보니 서봉 정상이다.













▼저 아래 대진(대전-진주) 고속도로가 산골짜기 따라 달려 가고















남덕유에서 뻗어 내린 능선은 저 멀리 희게 빛나는 향적봉까지 가물대고 저 아래 안부가 월성재, 우뚝솟은 봉우리가 삿갓봉, 바로 넘어가면 이름도 아름다운 삿갓재 산장일 것이다.






급경사 내리막 길은 철계단이 끝나면서부터 눈이 무릅까지 빠진다.



남덕유 정상(1507m) 오르는 갈림길에 왔지만 우회길로 향한다.









그제서야 남덕유 정상가신다는 몇분의 산님을 만나 반갑다고 인사하니 그분들도 제가 처음이라고 하는데 그 분들은 저아래 황점마을에서 올라오셨단다.









월성재에서 잠시 휴식하고 삿갓봉을 오르며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멍해지더니만 아파온다.
장갑속에 넣어 보아도 통증은 계속된다. 양지쪽에서 무릅 사이에 끼워 넣고 비벼 보는데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지금까지 오면서 문제없었는데 왜 그렇지 하며 계속 비비는데 바로 그때 뒤에서 한분의 산님이 숨을 몰아 쉬며 올라 오신다.

영각사에서 올랐는데 삿갓재 산장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향적봉으로 가신단다.
그 분 고맙게도 여유로 가져온 장갑을 꺼내 주시는데 그 속에 넣고 있으니 서서히 회복된다.

내 장갑은 지금까지 얼어있는 밧줄을 잡았고 사진 찍느라 자주 들락거리는 동안 장갑속에 축적된 땀이 발산되지 못해 축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겨울 산행은 땀과 같은 수분에 소흘히 대처하면 순식간에 동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정경사진만 찍었는데 서봉을 넘어가는 햇님께 부탁하여 서로간에 멋찐 기념사진도 남기고 삿갓봉을 향하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삿갓재 정상(1410m) 갈림길을 우회하여 곧바로 내려가는데 바로 맞은편의 무룡산은 저녁 노을로 불어지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급경사지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자칫 미끄러지면 한참동안 사면을 타고 내려갈 것 같다.



아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려가니 반가운 전등 불빛이 반기며 삿갓재 산장 안으로 안내한다.

규모는 작아 보이지만 2층 구조로 취사장엔 물도 나오고 산장의 기능과 효율성을 고심한 흔적이 영역하다.
이렇게 깜찍한 산장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 좋다. 관리인도 친절하고...

20여분이 여장을 풀고 저녁준비에 열심이다.
나도 뒤따라 불려놓은 쌀로 정성을 들이니 맛있는 밥이 되었다.

바로 옆분들은 오리고기와 보글대는 찌개로 소주잔을 돌리고 어떤 분은 압력밥솥에 정성을 들이고 구운 새우도 먹어보라고 주신다.

국 대신 라면을 끓일까하는데 끓는 찌개에 김치를 추가로 넣고 함께 먹자하신다.
이내 오리고기와 소주잔이 넘어 오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주민증까지 내보이며 뜻밖에도 모두가 동갑내기임을 확인한다.





아니 우째 이럴 수가? 한참 형님뻘인줄 알았는데......
이래 저래 사는 이야기로 밤은 깊어가고 ...

침실바닥은 목재마루지만 곳곳에 방열기가 가동되어 실내공기는 따뜻한 편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볼일도 볼겸 밖을 나가 보니 바람소리만 윙윙댈 뿐 그야말로 고요하고 깊은 밤이다.

밤하늘 가득한 별님들은 한분도 주무시지 않고 곤히 잠든 산꾼들 머리위로 하늘의 온갖 정기를 쏟아 붙고 계시는데 어떤 별님은 곧바로 내려 올 것 만 같다.

저 별빛은 밤이나 낮이나 같은 모습으로 저렇게 반짝이고 있을텐데 우리들은 그들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우주공간에 떠 있는 별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저렇게 수많은 별들 상호간에는 질량에 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한다는데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작용하는 또 다른 인력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지....

참으로 신비롭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들과 같은 피조물인 사람의 지혜로는 그의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도록 되어 있나보다.

4시반이 지나자 조용히 배낭을 챙겨 나가시는 분이 계신다.
곧바로 뒤따라 가보니 울산 영남알프스 깃발을 달고 백두대간 종주하시는 분들이다.





모두가 30대 주부들로서 백두대간 마지막 5개구간중 오늘은 육십령 넘어 영취산 무령고개까지 란다.

캄캄한 밤길을 헤치며 삿갓봉을 넘어 내가 왔던 그 길을 역으로 가실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하고 놀랍다.
그야말로 특수부대원 못지 않다.

내 기역속의 대단했던 여성산님들은 모두가 대구와 부산분들인데 이분들 역시 울산이라니 영남 알프스 신령님은 여성산님에게 특별한 정기를 주시는가 보다.

아침을 서둘렀건만 배낭 챙겨 취사장을 나서니 어느새 동녘하늘 위로 붉은 햇쌀이 퍼지길래 그 자리에서 얼른 담아내고 삿갓재 산장과 기약없는 이별을...





무룡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지붕만 살짝 보이는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삿갓봉이 잘 가고 또 오라 한다.









무룡산 정상(1491m)에서 남덕유와 서봉 그리고 삿갓봉에 눈인사를 건네고 동업령을 찾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곧 나타날 것만 같은 동업령은 어디에 있는지....











또 다시 올랐다 내려가니 그제서야 칠연폭포가 있다는 장수군 안성리와 거창군 병곡리로 갈리는 동업령(1320m)이다.





백암봉(1503m)과 중봉(1594m)을 거쳐 덕유평전에 이르니 오래된 주목이 여기저기....
서봉을 거쳐 이곳까지 오면서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곳에만 있으니 식물들도 자기들끼리 촌락을 이루며 사는 모양이다.





골다공증처럼 속이 비어 있는 증조 할아버지 주목도 보이는데 헌 거죽같은 피부만으로도 생명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지혜가 놀랍고 신비롭기만 하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점심을 해결할까 하는데 취사장은 피난처인양 온통 난장판이다.
바닥 한구석에서 간신히 해결하고 나서는데 웬지 화가 난다.

겉보기로는 예술적일지 몰라도 기능성과 효율성을 간과했으니....
산을 모르는 분이 설계했는지 그야말로 형식적인 산장이다.

향적봉(1614m)에 올라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 서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 동쪽으로 민주지산과 가야산 그리고 백두대간 길에 고별인사를 드리고 백련사로 이어지는 급경사 계단 길을 한참동안 ....


▲적상산 정상(1034m)에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있고 발전시설물은 산속 깊은 지하에







▲지리능선상의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삼공리 매표소를 빠져 나오기까지 지루한 계곡길은 구불구불 1시간 20분동안 계속되는데 삶의 지혜가 되는 잠언이라도 들려 주면 좋으련만 백련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온종일 기도중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