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人生의道

성경이 학문의 대상일까?

서로조아 2014. 5. 13. 13:06

모든 피조물중에 창조주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은 오로지 사람이라 했다.

우리들 사람만큼은 자신을 창조한 분을 알아볼만한 능력이 있다 할 것이니 곧 영이 아닐까.
동물처럼 육체를 제어하는 혼만 있다면 창조주 계심을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책무도 없다 할 것이다.

사람을 창조하면서 여타 창조물들을 관장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부여했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유혹에 이끌려 부여받은 능력이 역이용되었으니 자기 생각에 좋아보이는 것을 쫒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에 큰 뜻을 두고 오랫동안 창조의 역사를 꾸미셨건만 허사가 되었으니 창조주께서도 후회하셨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람을 창조한 창조주는 곧바로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가동시키면서 이같은 계획의 시작에서부터 끝날에 이르기까지를 성령으로 기록케 했으니 곧 성경이라 하지 않는가

창조주를 알아볼만한 능력이 있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해 볼 수는 있을지라도 연구만으로는 창조주의 근본취지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꽤를 쫒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살아가는 동안 성경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흠이 발견되면 곧바로 바로잡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창조주의 오묘한 뜻이 아침 햇살처럼 내 영을 깨울지라도 육체와 육체를 제어하는 혼은 여전히 단잠에 취하길 좋아한다.
성경공부에 심취하는 것만으로는 성령의 결실이 맺어진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웃자란 보리처럼 되지 않을까

창조주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다면 그가 바라는 바를 향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수행자의 길로 나서야 할 것이다.
수행자의 길에서 겪는 문제중심으로 성경을 궁구하다 보면 그에 필요한 영의 양식도 얻게 될 것이고, 영의 결실도 영글어 갈 것이다.

성경을 세상학문 배우듯이 머리로만 뜻을 밝혀 체계적으로 꿰고 있다한들 영의 결실이 맺어지겠는가?
종교적 이론 즉 교리만으로는 열매를 맺게 할 수는 없으리라.
전쟁을 치루는 전사처럼 옛사람과 싸워갈 때 말씀이 역사하여 결실에 이르게 하리라.

신앙생활을 산행에 비유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정상을 향하여 오르락 내리락 힘들고 위태로운 코스도 지나고, 때로는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할 때도 있을 것이다.
방황중에 사람을 잘 못 만나 엉뚱한 길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자기 생각대로 가다가 가시덤불을 만나 밤 늦도록 헛된 고생 하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정상까지 올라본 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을 듣기만 좋아하고 정작 오를자가 오르기를 주저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일같이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확인하면서 도전해 가야지 체력이 향상되고 산행길에 필요한 준비도 할 것이다.
본인이 아무런 땀 흘림없이 정상 등반에 성공한 자의 말만 듣는다 해서 정상에 이를 것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가 무슨 취지로 기록되었을까?
곡해하여 옛사람의 바램대로 편히 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옛사람의 끌어당김을 냉정히 뿌리치고 창조주 하나님이 제시하는 수행자의 길로 떠나야 할 것 아닌가?

말씀을 줄줄이 꽤면서 성경의 진의를 샅샅이 파헤칠지라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르려 하지 않는 이상, 성직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과실은 맺혀지지 아니할 것이다.

결국 신앙생활에서도 공짜는 없다 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한꺼번에 많이 모았다 해서 소용없듯이 구원에 이르는 성경기록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할지라도 자신의 십자가를 외면한다면 아무런 결실이 없으리라.

자기 합리화로 착각에 빠지지않도록 냉철하게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할 자는 더더욱....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성경을 알아가는 즐거움에만 집념하여 또다시 사탄에게 속는 것은 아닐런지....
잎새가 무성해진다 해서 열매도 풍성해진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