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冬

불경 품은 가야산이건만 2008216

서로조아 2013. 4. 12. 21:02



 


불경 품은 가야산이건만

2008.02.16(토, 맑음)

해인사버스종점(08:20)→해인사→석조여래입상(11:00~10)→상왕봉(11:40~50)→칠불봉(12:10)→상아덤(13:00~10)→여래불(14:00~10)→해인사(14:40~15:40)→버스정류장(16:10)






겨울도 끝나가는지 높은 산 음지쪽 사면에만 잔설이 남아 있다.
입춘 지나 우수가 임박하니 가야산 신령님께 인사드려야겠다

서부 터미날 옆 관문시장에서 돼지국밥 들고 해인사행(07:20) 버스에 오른다.
딸기로 유명한 고령읍 지나 가야천 따라가니 하늘로 치솟은 암봉마다 신성이 가득하다.

 



해인사 종점에 내려 먹거리 사 넣고 지난번 중도 하산했던 곳으로 가면서 물어보니 쌓인 눈으로 길 찾기 어렵다 한다.

발길 돌려 해인사 계곡따라 오르는데 얼음장 사이로 꾸룩 꾸룩 물소리 들려오고 싱그러운 산죽이 계속된다.









푸른 하늘 정상 암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인근에 석조여래입상이 계신단다.
찾아 보니 사람 키 만한 자연석에 부조형태로 조각된 여래불이다.







정상일대는 거친 편마암지대인데 이곳 불상만은 상아덤이나 만물상처럼 화강암이다.
조각하기 적당한 자연석을 찾아내서 상상에 그리는 여래불을 형상화했으니 참으로 놀랍다.

여래불은 어떤 의미가 있었길래?

정상이 가까울수록 바람소리 요란하다.
바위 틈새로 빠져 나오는 바람이 어찌나 센지 순식간에 얼어붙고 진행이 불가할 정도다.

수건으로 비상조치후 상왕봉(우두봉)에 올라 멀리 구름 속에 계실 지리산, 덕유산, 민주지산 신령님께 눈인사 드리고 칠봉봉을 향한다.



















칠불봉에서 내려다보니 지난해 들렀던 상아덤이 반갑다며 들렀다 가라신다.























절반쯤 하산했는데 또다른 마애여래입상이 가까이 계신단다.
아침에 뵜던 것 보다 엄청 큰데 역시 자연석에 부조형태다.





해인사 마당엔 사각 무늬 따라 사람들이 돌고 있다. 무슨 의미로 도는 것일까?
사각 중심으로 진행했다가 외곽으로 빠져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4곳을 돌아 나오니 들어갔던 원점이다.


한 평생 그 무엇을 찾아 바쁘게 살다 가는 공수래 공수거 인생을 뜻하는지?




팔만대장경은 서고처럼 보관되어 있는데 정교한 글자체와 수량도 놀랍거니와 적의 침략으로부터 불경만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깊은 산속으로 옮겨서 생명처럼 보존관리했음이 확실한 것 같다.









조정의 지원을 받은 스님들이 주도하여 장기간에 걸쳐 조각되었을 것이고 비밀스럽게 보관해야 했을테니 스님들이 경판 한장씩 가슴에 품고 머나먼 길을 걸어 깊은 산골짜기 이곳으로 옮겨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옛날 그 분들의 정성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나라의 안녕을 지켜 줄것으로 믿은 불경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조금이라도 감지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겉모양만 살필 뿐....
설명문 읽어도 한글의 뿌리인 한자의 뜻을 모르니....

한글 사랑에 한자교육 경시하고 이젠 콤퓨터와 영어 중시로 ....
먹거리도 그렇고 이러다간 자연 강대국의 속국이 될런지....

가야산 품에 간직된 불경이 전해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인사에서 생을 다하신 분들의 부도와 함께 성철 스님은 최상부에 특이한 모습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씀속에 후대에 전하려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어떤이는 망원경에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천체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길 좋아하고
어떤이는 마음의 눈을 밝혀 자연속에 깃든 신비스러움을 찾아 내어 감동을 얻고
어떤이는 자신의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지어 내길 좋아하고

하지만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 이상 피조물에 정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솔직히 그 어떤 자도 호흡을 중단하거나 먹지 못하면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육신속에 깃들어 살아가는 마음은 늙지 않지만 의지처인 육신이 노쇄됨으로 모든 욕망과 함께 총명이 어두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촛불처럼....

모든 것의 주인은 자연일진데 자연의 순리에 순종하는 것 외에 그 무엇이 있겠는가?
자연속에 깃든 오묘함을 인간의 꽤로 왜곡시켜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겸손함도 엄청난 깨달음 아닐까?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함께 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
솔직히 사고력이 있어 모든 피조물과 차이가 날 뿐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만물보다 뛰어났다고도 볼 수 없는데...
벼랑끝 소나무의 살아가는 지혜는 사람도 감히 흉내낼 수 없지 않은가

모든 피조물 중에 유독 인간에게만 사고력이 주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모든 피조물을 통제할 필요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자신이 어떻함을 깨닫고 자신을 창조한 신을 찾게 하려 했을까?

오늘도 깊은 산중에서 세상 즐거움을 단절한 체 수도 정진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의 종착역은 어딜까?




2008.02.17(일, 맑음)

대곡역(09:20) → 수목원 → 삼필봉(11:40) → 용연샘터(15:10) → 수목원(18:00)→ 찜질방


오늘도 지난번 갔던 길로 용연샘터에 가서 물 마시고 한 병 떠 와야겠다.
그렇다보면 하루가 가게 될 터이니..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니 달리 생각할 것이 없다.

보관장소가 없으니 갈아입을 옷 찜질 호텔로비에 맡겨 두고
김밥집에서 김치지게로 충전한 다음 우유와 쥬스 사 넣고 지난번처럼 산책길로 오른다.













양지쪽 사면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소나무 숲길 따라 용연샘터 갔다오니 오늘도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찜질호텔 인근에서 영양탕 들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 찾아 간다.